마블 시리즈는 한동안 정말 열심히 보다, 아이언맨이 마지막 인사를 전했던 엔드 게임 이후 시큰둥했었다. 화려했을지언정, 아직은 그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됐어, 이제는 관심 없어"로 포장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개봉은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마블의 열성적인 팬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로키'부터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내게는 그저 엔드 게임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 나는 여전히 '로키'를 안 봤지만,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 코로나19 거리두기 '이 시국' 메가박스 영화 관람 후기
"이 시국에 영화관 괜찮나?"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여태껏 지나온 수많은 때처럼 포기하기는 아쉬웠다. 고심 끝에 사람이 없을 심야 시간대를 골라 예매했다. 서울도 아닌 지방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다.
- 현재는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인해, 영화관도 밤 10시 이후에는 영업을 안 한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메가박스에서 관람했는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중간, 중간 좌석이 비워져 있다. 팝콘이나 음료 섭취도 금지된다. 이걸 모르고 영화관 스낵 코너에서 음식을 사 온 사람들도 몇몇 있었는데, 물론 먹는 건 안 되고, 그 큰 팝콘을 끌어안고 영화를 봐야 했다.
□ 어쩌면, 스포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줄거리 & 순수 관람평
영화는 미스테리오가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는 정체를 밝힌 시점에서 시작된다. 피터 파커는 어벤저스와 함께 세상을 구한 영웅이 아니라, 미스테리오를 죽인 살인범으로 전 세계의 지탄을 받는다. 너무나 현실적 이게도, 이 상황에서 주인공을 가장 괴롭게 하는 건 극성 파파라치도, 온라인 악플도 아니었다. 바로 대학 입시!
한국처럼 수능 점수로만 대학에 간다면,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미국은 좀 다른 가보다. 피터 파커와 MJ, 네드는 MIT 입학을 간절히 원했고, MIT는 정체가 까발려진 그들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사건이 시작된다.
"역시, 입시는, 게다가 대학은 어느 나라나 중요하구나. 기회의 땅, 미국도 어쩔 수 없구나."
결국, 피터 파커는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모두가 나를 잊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10대 철부지 답게 "아니, 제 여자 친구는 빼주세요", "큰엄마도 빼주세요", "친구도 빼주세요"라고 뒤늦은 요구를 하는 바람에 닥터의 주문을 엉망으로 만든다.
하지만 진짜 10대다움은 이게 아니다. 망친 주문을 따라, 이 차원으로 흘러들어온 빌런을 '고쳐보겠다'며 닥터를 따돌리고 뉴욕 전역을 깨부수고 다닌다. 이 과정에서 결국 큰엄마까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여기까지 봤을 때만해도, 나는 닥터를 따돌린 피터 파커와 그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큰 엄마 메이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마스크 안으로 탄식을 꾹꾹 눌러 삼켰다. 모든 걸 순리에 맞게 되돌려야 한다는 닥터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어른들 말 들어라, 이 철딱서니야"를 100번도 넘게 외쳤다. 물론, 마음 속으로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연애 상담할 때, 늘 언니들이 하는 말은 진리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그리고, 여느 마블 영화가 그러듯 후반부에 가서 나는 또 뒤통수를 맞았다.
여전히 한편에서는 피터의 '멋 모르는' 정의가 만들어낸 참사-도시가 무너지고 엉뚱한 사상자가 발생한 것-가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래도 이런 사람이 있어서, 이 망할 세상이 망하지 않고 굴러가고 있구나"란 생각이 슬며시 피어 올랐다.
- 온라인에 유명한 짤방과 댓글이 있지 않은가. 동네 길가가 더러워서 몇 시간에 걸쳐 치운 사람과, 너 같은 사람 때문에 세상이 안 망한다는 댓글.
정작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은 피터 자신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를 모두 잃고, 그저 친절한 이웃으로 남기를 선택했다. 미래마저 포기했다. 이제 피터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철부지 10대 아기 거미가 성인이 되는 과정은 이토록 외롭고 잔인했다.
이번에도 마블은 "어떠한 희생이 있어도, 누군가는, 또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한다"를, 나 같은 관람객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치면서 일깨웠다. 자본주의 히어로 영화야 말로, 21세기 동화다.
한편, 부제인 '노 웨이 홈' 역시 이 시국과 잘 어울린다. 영화 속에서 아기 거미가 본인의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었음을 의미하는 거겠지만, 이 시국에 많은 이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나다.
어떻게든 버텨, 결국에는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다고 매일 다짐하고는 있지만 정말 시간이 길어질 수록 힘들다. 게다가 SNS에서 중국의 어느 한 도시가 또 봉쇄됐다는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정말,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련지.
□ 왜 다들 나가는 거니?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쿠키 영상 2개 있어요!
영화가 끝나고 은근히, 또 대놓고 열성적인 마블팬인 친구는 "쿠키 영상 2개다. 얌전히 앉아 있어"라고, 진작에 나를 앉혀 놨기 때문에 옷도 입지 않고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불이 켜지자마자 극장 안에 50%가 넘는 사람이 우르르 나갔다. 그러다 첫 번째 쿠키 영상이 나오고, 또 나머지의 50%가 나갔다. 결국 두 번째 쿠키 영상은, 나와 친구를 포함해 한 대여섯 명 정도가 본 것 같다.
핵심 내용 없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쿠키 영상을 소개하면 하나는 영화 '베놈'에 관한 것, 나머지는 내년 5월에 개봉하는 닥터 스트레인지2 예고였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돌아온다..." 좀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지난 11월에 재촬영했다는 거 보면 사정이 있던 모양이다. 5월까지 진짜 어떻게 기다리냐~
내가 봤을 때, 관람객 200백만명을 넘기네 마네 했는데 벌써 500만 명이 가까워진다고 한다. 역시, 이 시국이라도 사람들이 마블은 참을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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